‘법인 콜’을 아시나요?
앱을 통해 일감을 받고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 가운데 대리운전기사들은 프로그램 사에 올라온 앱에서 ‘콜’을 잡는다. 그 중 흔히 술을 마시고 귀가할 때 대리기사를 부르기 위해 사용하는 콜을 대리기사들은 ‘일반 콜’이라고 말한다. ‘법인 콜’이란 것도 있다. ‘법인 콜’은 기업과 대리운전 업체가 정기적으로 계약을 맺는데, 주로 기업 임원들이 회식이나 출장, 주요 손님을 접대할 때 이용하는 콜이다. 이런 ‘법인 콜’을 타는 대리운전 기사는 3만 명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한다.
보통의 법인 대리기사들은 소속사를 적게는 한두 곳에서 대여섯 곳까지 가입해 일한다. 한 곳에서 일하면 앱에서 보이는 콜이 적어 벌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명 ‘똥콜’이라도 타겠다고 마음을 내려놓는 게 아니라면 가격이 좋은 콜은 눈 깜빡할 새도 없이 사라진다. 순발력이 좋고 머리 회전이 잘 돼야 그나마 ‘운수 좋은 날’이다.
대리기사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곱게’ 살아온 사람도 드물다. 한철희 씨도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우연히 대리기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처음부터 ‘법인 콜’을 탄 건 아니었다. ‘일반 콜’로 시작하다 동료로부터 ‘법인 콜’을 타보라는 제안을 받고 2023년부터 법인 대리 세계에 들어섰다. ‘법인 콜’은 ‘일반 콜’에 비해 보수가 좀 높은 데 비해 까다로운 것도 많았다. 복장도 자유롭지 않았다. 검정색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 넥타이 필수, 검정색 구두, 한겨울이어도 모자가 달리지 않은 검정색 패딩을 입어야 한다. 그나마 나아진 건 예전엔 패딩을 입으면 안 되고 코트를 입어야 했단다. 법인 대리기사로 일하려면 이 조건에 동의를 해야 일을 시작할 수 있기도 하지만, 고객에 대한 예의로 생각해 복장에 대해선 크게 문제 의식을 느끼진 않는 것 같았다.
그를 ‘버럭’ 하게 만든 건, 부당함을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도 있었지만, 알고 싶었다.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일들이 자신만의 생각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자꾸 궁금해졌다. 그는 반 농담 삼아 “사람을 잘못 만났다.”라며 웃는다. 아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는 노동조합을 찾게 됐고, 결국 발을 적시고 말았다. 그것도 푹~

▲2025년 3월 11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진행한 "플랫폼 기업 '청방' 옹호하는 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
관리비, 경조사비는 어디에?
그는 법인업체 ‘㈜청방’과 2023년 4월, 운전대행서비스 위탁계약을 체결했다. ㈜청방은 SK, CJ, 삼성 등 대기업들과 계약을 맺어 대리운전 기사를 연결해주는 법인 대리운전업체다. 예전에 대기업들은 회사 내에 자체 기사를 고용했지만, IMF 이후 구조조정을 하면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대리운전 업체를 통해 필요할 때 공급받는 방식을 선택했다.
법인 대리운전업체들은 복장 문제 외에도 특별한 것이 있다. 기사들에게 단체보험 가입 명목으로 관리비를 받고, 소속 기사들의 애경사 등에 지급하는 경조사비를 기사들에게 강제로 모아 주는 것이다. 보통 한 달에 한 명당 관리비 1만 5천 원, 경조사비는 건 당 몇 천 원씩으로 대중없다. 그런데 업체들은 받을 줄만 알지 받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한 달에 어렴풋이 계산해도 관리비만 해도 1천 5백만 원쯤은 될 텐데 말이다(대략적인 수치로 업체마다 차이 있음). 그는 궁금했다. 고객에게 받은 대리비에서 수수료 떼 가고, 보험료도 내가 내는데 회사는 그 돈을 받아서 어디에 어떻게 쓰는 걸까. 그래서 법인 업체들에게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 명의로 내역 공개를 요구하며 교섭을 신청했다.
그와 노조는 2024년 10월, 불공정한 배차 행위와 불투명한 노동 조건에 대한 사실 확인 공문을 보내고 교섭 요구서를 발송했다. 그런데 유독 ㈜청방만 “나 몰라” 전략을 구사하며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참다못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서울지노위)에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 사실 공고 시정 신청을 했고, 인용 결정이 나왔다. 결국, 12월 20일 업체는 홈페이지에 교섭 요구 노조 확정 공고를 했다. 그런데 그즈음 업체는 노조에서 요구해온 경조사비를 없애면서 오히려 관리비를 인상하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그는 기사들이 모여 있는 SNS 소통방에 관리비 인상에 대해 항의 글을 올렸다. 그러자 업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회사와 추구하는 방향이 맞지 않아 위탁운영 계약 유지가 어렵다”라는 해고 문자를 보냈다. 친절하게도 “그동안 수고하셨고,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주)청방이 문자로 보낸 해고 통보
교섭은 하겠지만 너는 안 돼!
다시, 그와 노조가 서울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하자 업체는 “교섭은 하겠지만, 한 씨의 복직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라며 얼토당토않은 입장을 전달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지 않나. 노동자들이 해고 투쟁을 하고 사 측과 협상을 할 때 주로 듣는 말. “해고자 000만 복직 안 하면 타협할게.”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일반 사업장에서나 있을 만한 피드백이었다.
하지만 서울지노위는 3월 13일 ㈜청방의 행위는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플랫폼 노동자를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취급하는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락’을 걸어 일할 수 없게 만들어 해고 시키는 대리운전 판에서, 항의도 못 하고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고 혼자 울분만 토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대리운전 업체로부터 해고 경험이 있는 한 법인 대리운전기사는 “청방이 대기업에서 노동자 탄압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청방과 거래하는 기업들은 당장 청방을 진상조사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당노동행위 판정에도 ㈜청방은 여전히 교섭에 응할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플랫폼 기업과 교섭한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지만, 노조는 다른 법인업체들과 교섭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노조 밖에 있는 법인 기사들도 교섭 진행 과정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작은 모래알이 뭉치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 것처럼 흩어져 있는 플랫폼 노동자가 뭉치면? 상상에 맡기겠다.
글: 강인수 노조 선전위원
‘법인 콜’을 아시나요?
앱을 통해 일감을 받고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 가운데 대리운전기사들은 프로그램 사에 올라온 앱에서 ‘콜’을 잡는다. 그 중 흔히 술을 마시고 귀가할 때 대리기사를 부르기 위해 사용하는 콜을 대리기사들은 ‘일반 콜’이라고 말한다. ‘법인 콜’이란 것도 있다. ‘법인 콜’은 기업과 대리운전 업체가 정기적으로 계약을 맺는데, 주로 기업 임원들이 회식이나 출장, 주요 손님을 접대할 때 이용하는 콜이다. 이런 ‘법인 콜’을 타는 대리운전 기사는 3만 명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한다.
보통의 법인 대리기사들은 소속사를 적게는 한두 곳에서 대여섯 곳까지 가입해 일한다. 한 곳에서 일하면 앱에서 보이는 콜이 적어 벌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명 ‘똥콜’이라도 타겠다고 마음을 내려놓는 게 아니라면 가격이 좋은 콜은 눈 깜빡할 새도 없이 사라진다. 순발력이 좋고 머리 회전이 잘 돼야 그나마 ‘운수 좋은 날’이다.
대리기사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곱게’ 살아온 사람도 드물다. 한철희 씨도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우연히 대리기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처음부터 ‘법인 콜’을 탄 건 아니었다. ‘일반 콜’로 시작하다 동료로부터 ‘법인 콜’을 타보라는 제안을 받고 2023년부터 법인 대리 세계에 들어섰다. ‘법인 콜’은 ‘일반 콜’에 비해 보수가 좀 높은 데 비해 까다로운 것도 많았다. 복장도 자유롭지 않았다. 검정색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 넥타이 필수, 검정색 구두, 한겨울이어도 모자가 달리지 않은 검정색 패딩을 입어야 한다. 그나마 나아진 건 예전엔 패딩을 입으면 안 되고 코트를 입어야 했단다. 법인 대리기사로 일하려면 이 조건에 동의를 해야 일을 시작할 수 있기도 하지만, 고객에 대한 예의로 생각해 복장에 대해선 크게 문제 의식을 느끼진 않는 것 같았다.
그를 ‘버럭’ 하게 만든 건, 부당함을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도 있었지만, 알고 싶었다.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일들이 자신만의 생각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자꾸 궁금해졌다. 그는 반 농담 삼아 “사람을 잘못 만났다.”라며 웃는다. 아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는 노동조합을 찾게 됐고, 결국 발을 적시고 말았다. 그것도 푹~
▲2025년 3월 11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진행한 "플랫폼 기업 '청방' 옹호하는 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
관리비, 경조사비는 어디에?
그는 법인업체 ‘㈜청방’과 2023년 4월, 운전대행서비스 위탁계약을 체결했다. ㈜청방은 SK, CJ, 삼성 등 대기업들과 계약을 맺어 대리운전 기사를 연결해주는 법인 대리운전업체다. 예전에 대기업들은 회사 내에 자체 기사를 고용했지만, IMF 이후 구조조정을 하면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대리운전 업체를 통해 필요할 때 공급받는 방식을 선택했다.
법인 대리운전업체들은 복장 문제 외에도 특별한 것이 있다. 기사들에게 단체보험 가입 명목으로 관리비를 받고, 소속 기사들의 애경사 등에 지급하는 경조사비를 기사들에게 강제로 모아 주는 것이다. 보통 한 달에 한 명당 관리비 1만 5천 원, 경조사비는 건 당 몇 천 원씩으로 대중없다. 그런데 업체들은 받을 줄만 알지 받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한 달에 어렴풋이 계산해도 관리비만 해도 1천 5백만 원쯤은 될 텐데 말이다(대략적인 수치로 업체마다 차이 있음). 그는 궁금했다. 고객에게 받은 대리비에서 수수료 떼 가고, 보험료도 내가 내는데 회사는 그 돈을 받아서 어디에 어떻게 쓰는 걸까. 그래서 법인 업체들에게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 명의로 내역 공개를 요구하며 교섭을 신청했다.
그와 노조는 2024년 10월, 불공정한 배차 행위와 불투명한 노동 조건에 대한 사실 확인 공문을 보내고 교섭 요구서를 발송했다. 그런데 유독 ㈜청방만 “나 몰라” 전략을 구사하며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참다못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서울지노위)에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 사실 공고 시정 신청을 했고, 인용 결정이 나왔다. 결국, 12월 20일 업체는 홈페이지에 교섭 요구 노조 확정 공고를 했다. 그런데 그즈음 업체는 노조에서 요구해온 경조사비를 없애면서 오히려 관리비를 인상하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그는 기사들이 모여 있는 SNS 소통방에 관리비 인상에 대해 항의 글을 올렸다. 그러자 업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회사와 추구하는 방향이 맞지 않아 위탁운영 계약 유지가 어렵다”라는 해고 문자를 보냈다. 친절하게도 “그동안 수고하셨고,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주)청방이 문자로 보낸 해고 통보
교섭은 하겠지만 너는 안 돼!
다시, 그와 노조가 서울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하자 업체는 “교섭은 하겠지만, 한 씨의 복직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라며 얼토당토않은 입장을 전달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지 않나. 노동자들이 해고 투쟁을 하고 사 측과 협상을 할 때 주로 듣는 말. “해고자 000만 복직 안 하면 타협할게.”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일반 사업장에서나 있을 만한 피드백이었다.
하지만 서울지노위는 3월 13일 ㈜청방의 행위는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플랫폼 노동자를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취급하는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락’을 걸어 일할 수 없게 만들어 해고 시키는 대리운전 판에서, 항의도 못 하고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고 혼자 울분만 토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대리운전 업체로부터 해고 경험이 있는 한 법인 대리운전기사는 “청방이 대기업에서 노동자 탄압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청방과 거래하는 기업들은 당장 청방을 진상조사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당노동행위 판정에도 ㈜청방은 여전히 교섭에 응할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플랫폼 기업과 교섭한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지만, 노조는 다른 법인업체들과 교섭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노조 밖에 있는 법인 기사들도 교섭 진행 과정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작은 모래알이 뭉치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 것처럼 흩어져 있는 플랫폼 노동자가 뭉치면? 상상에 맡기겠다.
글: 강인수 노조 선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