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성’ 둘러싼 전 세계 플랫폼 노사 간 격돌
플랫폼 노동자 기본권 제도화에 나선 각국 정부들, 그런데 한국은?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상이 잠시 멈추거나 느리게 돌아갈 때가 있었죠. 너도나도 ‘비대면 업무’ 방식을 도입했고, 세상이 돌아가도록 만드는데 대규모 플랫폼 노동이 투입됩니다. 어쩔 땐 ‘영웅’으로, 어쩔 땐 ‘필수노동자’로 추켜세워지기도 했지만, 노동조건은 개선되지 않은 ‘립서비스’에 그쳤죠.
그래서 2021~2023년에 전 세계 플랫폼 노동자들이 단결하며 일어섭니다. 곳곳에서 노조가 만들어지고 저항이 조직되었죠. 남반구, 북반구 가리지 않고,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서 공통된 현상이었습니다. 오늘은 미국에서 파업이 벌어지고 내일은 영국에서 전향적인 법원 판결이 나오게 되고 모레는 동아시아 작은 섬나라에서 라이더들이 노조를 결성하는 등, 플랫폼 노동자의 진출은 그야말로 세계적 현상이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2024~2025년에는 플랫폼 노동 관련 소식이 좀 뜸한 편입니다. 세상이 좀 살만해져서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점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왜 이런 걸까요? 답은 이렇습니다. 2023년까지 거세게 올라오던 플랫폼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은 이제 각국 정부들로 하여금 이들 노동자의 기본권을 법 또는 제도로 만드는 논의를 시작하도록 만들어냅니다.
특히 유럽연합에서는 꽤 진보적인 ‘플랫폼 노동자 입법지침’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요. 이제 유럽연합 소속 27개 정부가 일제히 이 입법지침에 따라 자국 법률을 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플랫폼 노동자들의 진출은 이제 개별 플랫폼에서의 조직화나 투쟁을 넘어, 어떤 법 제도를 통해 기본권을 보장받을 것인가, 즉 정치적 영역과 법 제도적 영역으로 전장이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개별 플랫폼에서의 조직화나 투쟁 소식이 뜸해지게 된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해외 플랫폼 노동 관련 법 제도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합니다. 그 목적이 좀 재미있는데요. 다른 나라 플랫폼 노동 보호 수준이 높아서 한국을 상대로 무역분쟁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랍니다. 해외에 비해 한국에서의 플랫폼 노동 권리보장 수준이 낮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거죠.
대다수 국가에서 ‘노동자성 인정’ 토대로 권리 보장
최근 그 연구용역 최종보고서가 공개되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그리고 유럽연합(EU) 법제를 소개하고 비교하고 있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미국·영국·독일을 비롯해 EU 모두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근로자성) 인정’을 핵심 내용으로 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의 경우 ‘공정근로기준법’과 ‘연방노동관계법’에 전통적인 노동자성 판단기준이 있고 법원 판례를 통해 수십 년간 축적해왔습니다. 게다가 20여 개 주에서 사용하는 ABC 테스트를 통해 ‘노동자성(근로자성)’을 아주 넓게 판단하는 기법도 있지요.
영국과 독일 역시 핵심은 ‘노동자성(근로자성) 판단’에 있습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최근 플랫폼 노무제공자를 노동자로 간주하는 2개의 중요한 입법안 논의된 바 있습니다. 독일 총선에서 약진했던 ‘좌파당’ 기억하시나요? 2개 법률 모두 좌파당이 내놓은 건데, 입법은 좌절되었지만 추후 입법을 위한 광범한 플랫폼 노동 관련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EU 역시 “플랫폼 노동의 가장 큰 문제는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상 지위가 불분명하다는 것(또는 잘못된 분류)”에 있기 때문에 ‘고용 관계 추정’이라는 방법을 입법지침에 담았습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플랫폼종사자의 ‘노동자성(근로자성) 판단’, 여기에 덧붙여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 책임’까지 확정해주는 겁니다. 자꾸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고 우기는 플랫폼 기업의 행태를 보면 진일보한 제도라고 할 수 있죠.
고용상 지위가 명확해지면, 즉 노동자성이 인정되면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거죠. 한국 역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노동자)’로 인정되면 근로기준법이 보장한 각종 권리는 기본이고 최저임금법,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법, 산재보험법, 고용보험법 등 10여 개 노동관계법이 차별 없이 온전히 적용되어 권리보장 수준이 높아지지 않습니까.
엉뚱하게 ‘자율규제’ 내세운 보고서 결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겠다는 플랫폼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고 지원해야 한다. 자율규제적 접근은 대중의 압력과 (초)국가적 조치가 동반된다면 플랫폼에서의 불공정한 노동조건을 극복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런데 연구용역 최종보고서는 EU의 플랫폼 노동 법제가 주는 시사점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황당함의 극치를 달리는 거죠. EU의 법제는 ‘자율규제’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제도이며, 플랫폼 노동과 기업 사이의 ‘고용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기본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인데 이걸 어떻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결론을 이렇게 몰아가는 건, 결국 한국 정부는 노동자성을 넓게 인정하는 해외 법제 취지를 거슬러 가겠다는 것, 즉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자율규제’ 정도로 퉁치고 가자는 방향을 암시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내란 정부를 걱정해줄 처지가 아니긴 합니다만, 결론을 이렇게 내면 조만간 한국 정부는 플랫폼 노동 권리보장 수준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무역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정부가 그토록 좋아하는 ‘자율규제’의 꼴이 뭔지 보여드릴까요. 네이버, 배민, 쿠팡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공룡 플랫폼으로 꼽히는 곳이 카카오입니다. 카카오그룹은 2023년 12월에 ‘준법과신뢰위원회’라는 기구를 출범시킵니다. 카카오 같은 대기업이 골목상권에까지 진출한다, 플랫폼 노동에 대한 보호 수준이 너무 낮다, 자영업자들과 수많은 분쟁에 휘말린다, 갑질이 장난이 아니다…. 수많은 논란 앞에 선 카카오그룹이 나름, 시민사회 눈치를 보면서 고민한 결과라고 할 수 있죠.
출범하지 2개월 뒤인 작년 2월에 이 위원회는 카카오그룹에 ‘3대 의제’를 권고합니다. 그 의제들이 뭘까요? 책임경영, 윤리적 리더십, 사회적 신뢰 회복입니다. 네, 모두 좋은 얘기들이네요. 여기에 플랫폼 노동 권리보장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이자는 내용도 있으면 좋겠지만, 여하튼 이 세 가지라도 제대로 지켜진다면 적어도 카카오 구성원들이 부끄러워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 연간보고서 2024' @카카오 홈페이지
카카오가 보여준 ‘자율규제’의 민낯
그런데 이 의제를 권고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올해 1월 15일, 카카오그룹은 이 ‘3대 의제’ 권고 이행을 완료했다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와~ 3대 의제 이행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평가한 게 아니라 완료했다는 것, 그러니까 완벽하게 수행해 냈다는 겁니다.
그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카카오 창업자이자 그룹 총수라 할 수 있는 김범수 의장이 작년 7월 23일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죠. 혐의가 뭐였나요? SM엔터 인수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SM엔터 주가를 고액으로 책정해 시세조종을 벌였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에 주식 대량 보유 보고를 하지 않은 혐의도 있고요.
그리고 작년 12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몰아주기 의혹’과 관련 총 151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확정하기도 했습니다. 개인택시 기사들이 아니라 가맹 또는 직영에 해당하는 카카오T 블루 기사들에게 콜을 몰아줬다는 건데, 이럴 수 있는 힘은 카카오모빌리티의 ‘독점’이라는 권력에서 나오기 때문에 공정위가 나선 거죠. 그나마 작년 10월에 공정위는 무려 724억 원의 과장금 부과를 발표했는데, 2개월 뒤에 많이 깎아줘서 확정한 금액이 151억입니다.
그룹 총수가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되고, 그룹의 가장 큰 돈벌이 기업인 카카오모빌리티는 독점적 권력으로 이윤을 뽑아낸 혐의로 거액의 과징금을 때려 맞았는데, 카카오그룹은 3대 의제를 모두 이행했다고 선언한 겁니다. 총수 구속이 ‘책임경영’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시세조종과 콜 몰아주기가 ‘윤리적 리더십’이 할 일입니까?
그 결과로 ‘사회적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는데 3대 의제 이행 ‘완료’라니, 이분들 한국말 쓰시는 거 맞습니까. 이게 ‘자율규제’라는 허울 좋은 단어의 민낯입니다. 플랫폼 기업에게 적용해야 할 규제는 ‘자율규제’가 아니라, 해외의 법 제도가 가리키는 글로벌 표준 즉 ‘노동자성 인정’에 기반한 플랫폼 노동기본권 보장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거 제대로 가르쳐 주려면 한국의 플랫폼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허허.
‘노동자성’ 둘러싼 전 세계 플랫폼 노사 간 격돌
플랫폼 노동자 기본권 제도화에 나선 각국 정부들, 그런데 한국은?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상이 잠시 멈추거나 느리게 돌아갈 때가 있었죠. 너도나도 ‘비대면 업무’ 방식을 도입했고, 세상이 돌아가도록 만드는데 대규모 플랫폼 노동이 투입됩니다. 어쩔 땐 ‘영웅’으로, 어쩔 땐 ‘필수노동자’로 추켜세워지기도 했지만, 노동조건은 개선되지 않은 ‘립서비스’에 그쳤죠.
그래서 2021~2023년에 전 세계 플랫폼 노동자들이 단결하며 일어섭니다. 곳곳에서 노조가 만들어지고 저항이 조직되었죠. 남반구, 북반구 가리지 않고,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서 공통된 현상이었습니다. 오늘은 미국에서 파업이 벌어지고 내일은 영국에서 전향적인 법원 판결이 나오게 되고 모레는 동아시아 작은 섬나라에서 라이더들이 노조를 결성하는 등, 플랫폼 노동자의 진출은 그야말로 세계적 현상이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2024~2025년에는 플랫폼 노동 관련 소식이 좀 뜸한 편입니다. 세상이 좀 살만해져서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점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왜 이런 걸까요? 답은 이렇습니다. 2023년까지 거세게 올라오던 플랫폼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은 이제 각국 정부들로 하여금 이들 노동자의 기본권을 법 또는 제도로 만드는 논의를 시작하도록 만들어냅니다.
특히 유럽연합에서는 꽤 진보적인 ‘플랫폼 노동자 입법지침’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요. 이제 유럽연합 소속 27개 정부가 일제히 이 입법지침에 따라 자국 법률을 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플랫폼 노동자들의 진출은 이제 개별 플랫폼에서의 조직화나 투쟁을 넘어, 어떤 법 제도를 통해 기본권을 보장받을 것인가, 즉 정치적 영역과 법 제도적 영역으로 전장이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개별 플랫폼에서의 조직화나 투쟁 소식이 뜸해지게 된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해외 플랫폼 노동 관련 법 제도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합니다. 그 목적이 좀 재미있는데요. 다른 나라 플랫폼 노동 보호 수준이 높아서 한국을 상대로 무역분쟁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랍니다. 해외에 비해 한국에서의 플랫폼 노동 권리보장 수준이 낮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거죠.
대다수 국가에서 ‘노동자성 인정’ 토대로 권리 보장
최근 그 연구용역 최종보고서가 공개되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그리고 유럽연합(EU) 법제를 소개하고 비교하고 있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미국·영국·독일을 비롯해 EU 모두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근로자성) 인정’을 핵심 내용으로 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의 경우 ‘공정근로기준법’과 ‘연방노동관계법’에 전통적인 노동자성 판단기준이 있고 법원 판례를 통해 수십 년간 축적해왔습니다. 게다가 20여 개 주에서 사용하는 ABC 테스트를 통해 ‘노동자성(근로자성)’을 아주 넓게 판단하는 기법도 있지요.
영국과 독일 역시 핵심은 ‘노동자성(근로자성) 판단’에 있습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최근 플랫폼 노무제공자를 노동자로 간주하는 2개의 중요한 입법안 논의된 바 있습니다. 독일 총선에서 약진했던 ‘좌파당’ 기억하시나요? 2개 법률 모두 좌파당이 내놓은 건데, 입법은 좌절되었지만 추후 입법을 위한 광범한 플랫폼 노동 관련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EU 역시 “플랫폼 노동의 가장 큰 문제는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상 지위가 불분명하다는 것(또는 잘못된 분류)”에 있기 때문에 ‘고용 관계 추정’이라는 방법을 입법지침에 담았습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플랫폼종사자의 ‘노동자성(근로자성) 판단’, 여기에 덧붙여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 책임’까지 확정해주는 겁니다. 자꾸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고 우기는 플랫폼 기업의 행태를 보면 진일보한 제도라고 할 수 있죠.
고용상 지위가 명확해지면, 즉 노동자성이 인정되면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거죠. 한국 역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노동자)’로 인정되면 근로기준법이 보장한 각종 권리는 기본이고 최저임금법,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법, 산재보험법, 고용보험법 등 10여 개 노동관계법이 차별 없이 온전히 적용되어 권리보장 수준이 높아지지 않습니까.
엉뚱하게 ‘자율규제’ 내세운 보고서 결과
그런데 연구용역 최종보고서는 EU의 플랫폼 노동 법제가 주는 시사점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황당함의 극치를 달리는 거죠. EU의 법제는 ‘자율규제’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제도이며, 플랫폼 노동과 기업 사이의 ‘고용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기본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인데 이걸 어떻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결론을 이렇게 몰아가는 건, 결국 한국 정부는 노동자성을 넓게 인정하는 해외 법제 취지를 거슬러 가겠다는 것, 즉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자율규제’ 정도로 퉁치고 가자는 방향을 암시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내란 정부를 걱정해줄 처지가 아니긴 합니다만, 결론을 이렇게 내면 조만간 한국 정부는 플랫폼 노동 권리보장 수준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무역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정부가 그토록 좋아하는 ‘자율규제’의 꼴이 뭔지 보여드릴까요. 네이버, 배민, 쿠팡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공룡 플랫폼으로 꼽히는 곳이 카카오입니다. 카카오그룹은 2023년 12월에 ‘준법과신뢰위원회’라는 기구를 출범시킵니다. 카카오 같은 대기업이 골목상권에까지 진출한다, 플랫폼 노동에 대한 보호 수준이 너무 낮다, 자영업자들과 수많은 분쟁에 휘말린다, 갑질이 장난이 아니다…. 수많은 논란 앞에 선 카카오그룹이 나름, 시민사회 눈치를 보면서 고민한 결과라고 할 수 있죠.
출범하지 2개월 뒤인 작년 2월에 이 위원회는 카카오그룹에 ‘3대 의제’를 권고합니다. 그 의제들이 뭘까요? 책임경영, 윤리적 리더십, 사회적 신뢰 회복입니다. 네, 모두 좋은 얘기들이네요. 여기에 플랫폼 노동 권리보장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이자는 내용도 있으면 좋겠지만, 여하튼 이 세 가지라도 제대로 지켜진다면 적어도 카카오 구성원들이 부끄러워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 연간보고서 2024' @카카오 홈페이지
카카오가 보여준 ‘자율규제’의 민낯
그런데 이 의제를 권고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올해 1월 15일, 카카오그룹은 이 ‘3대 의제’ 권고 이행을 완료했다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와~ 3대 의제 이행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평가한 게 아니라 완료했다는 것, 그러니까 완벽하게 수행해 냈다는 겁니다.
그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카카오 창업자이자 그룹 총수라 할 수 있는 김범수 의장이 작년 7월 23일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죠. 혐의가 뭐였나요? SM엔터 인수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SM엔터 주가를 고액으로 책정해 시세조종을 벌였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에 주식 대량 보유 보고를 하지 않은 혐의도 있고요.
그리고 작년 12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몰아주기 의혹’과 관련 총 151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확정하기도 했습니다. 개인택시 기사들이 아니라 가맹 또는 직영에 해당하는 카카오T 블루 기사들에게 콜을 몰아줬다는 건데, 이럴 수 있는 힘은 카카오모빌리티의 ‘독점’이라는 권력에서 나오기 때문에 공정위가 나선 거죠. 그나마 작년 10월에 공정위는 무려 724억 원의 과장금 부과를 발표했는데, 2개월 뒤에 많이 깎아줘서 확정한 금액이 151억입니다.
그룹 총수가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되고, 그룹의 가장 큰 돈벌이 기업인 카카오모빌리티는 독점적 권력으로 이윤을 뽑아낸 혐의로 거액의 과징금을 때려 맞았는데, 카카오그룹은 3대 의제를 모두 이행했다고 선언한 겁니다. 총수 구속이 ‘책임경영’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시세조종과 콜 몰아주기가 ‘윤리적 리더십’이 할 일입니까?
그 결과로 ‘사회적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는데 3대 의제 이행 ‘완료’라니, 이분들 한국말 쓰시는 거 맞습니까. 이게 ‘자율규제’라는 허울 좋은 단어의 민낯입니다. 플랫폼 기업에게 적용해야 할 규제는 ‘자율규제’가 아니라, 해외의 법 제도가 가리키는 글로벌 표준 즉 ‘노동자성 인정’에 기반한 플랫폼 노동기본권 보장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거 제대로 가르쳐 주려면 한국의 플랫폼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허허.